작성일 : 14-06-17 18:58
'가계 저주'에서 자유함을 얻으십시오
 글쓴이 : 신가회
조회 : 828  
<P style="TEXT-JUSTIFY: inter-word; TEXT-ALIGN: justify">'메릴린 히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이르면서 촉발된 '가계의 저주'와 관련된 주제는 지금까지도 많은 성도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이 목회자들에게도 널리 읽혀지고 또 추천되면서 그 열기는 전혀 식을 줄을 모른다. 거기에다가 '찰스 크래프트'와 '이윤호 선교사'로 이어지는 '가계 저주' 시리즈는 잘 팔리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BR><BR>정말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와 있는데도 가계 저주는 흐르고 있는 것일까? 많은 성도들이 불안해 하기도 하고, 지금의 온갖 좋지 않은 일들이 결국 가계 저주로 인함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팔리는 책인 '가계 저주' 시리즈가 그토록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BR><BR>그런데 얼마전에 또 "가계에 흐르는 저주, 성경적인가?"(소재열 지음, 말씀사역 간)라는 책이 나와 '메릴린 히키'와 '이윤호'의 주장을 통렬하게 반박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월간 '교회와 신앙'에서는 본격적으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비성경적인 면과 그 이단성을 공격하고 나섰다. 거기에다가 옥한흠복사까지 '가계 저주'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그동안 현혹당해 왔단 말인가? <BR><BR>본인은 이윤호 목사의 치유사역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이윤호 목사의 가계 치유 강의 또한 직접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이윤호 목사의 책을 보지 않더라도 그의 주장이 어떠한 것인가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관점에서 이윤호 목사의 책을 접했을 때 그래도 현장 강의 보다는 굉장히 순화시키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음이 드러나지만 그 본질이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목격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옥한흠 목사와 소재열 목사의 주장이나 월간 '교회와 신앙'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한다. 즉, '메릴린 히키'나 '이윤호'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비성경적이며 오히려 그 주장을 따르게 될 때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BR><BR>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모를까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분명히 정죄함이 없다. 우리는 '종의 멍에를지지 않도록 자유함을 주셨다'(갈 5:1)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6)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옥한흠 목사의 말마따나 "불행하게도 주님이 자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치 죄의 종이나 된 것처럼 허덕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아마도 옛날에 무속신앙에 젖어 있었던 어떤 전통적인 흐름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예수를 믿고도 자유함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무엇인가 늘 끌려다니고 있다. 그리고 억눌리고 어떤 면에서는 고문을 당한 것 같은 심령을 가진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지적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 <BR><BR>혹시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고난이 가계의 저주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핍박을 당할 수도 있다. 주님께서는 그럴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BR><BR>"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1-7). <BR><BR>우리가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다 가계의 저주 때문이라면 성경은 결국 거짓말이 되고 만다. 민수기 23:8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그렇다면 우리가 이 고난을 받는 것이 다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라는 말인가? 소재열 목사는 이런 현상들이 "무속 신앙위에 기독교 신앙을 세운 결과"라고 말한다. 다시말해서 "기독교 무당종교"가 바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전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무당 점쟁이 식으로 믿으려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BR><BR>'가계의 저주'와 관련된 주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화제를 몰고 온것도 따지고보면 이러한 한국적 상황과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계 저주'는 속사람까지 완전히 변하지 못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신화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그 '저주'라는 신화안에 스스로 안주하고야 마는 것이다. <BR><BR>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혹시 그러한 가계가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그 순간부터 '새로운 피조물'이다. 고난이 혹시 닥쳐 올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직 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간다면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주님의 계획과 성취'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계 저주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BR><BR>우리가 가계 저주에서 현혹되서는 안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문제는 가계 치유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그러하다. 그래서 이미 여러 상담자들 가운데 '가계 저주'와 관련된 후유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들이 마련되고 있다. <BR><BR>그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신학적인 바탕이 서있는 목회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별다른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으나, 그렇치 못한 평신도들에게 있어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신학적 기반이 없을 경우에 이 책이 확대 해석되거나 상당 부분 잘못 인식됨으로 인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된다는 점에서 여러 상담자들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 분야의 책들이 장기간 동안 평신도부분 베스트셀러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그 후유증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여진다. <BR><BR>그렇다면 '가계 치유'로 인해 나타나는 후유증은 과연 무엇인가? 우선 가계 저주를 무작정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책이 널리 보급되면서 나타난 현상중의 하나는 인생사의 여러 일들을 반사적으로 가계의 저주로 치부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메릴린 히키'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안경 쓴 것도 조상의 저주 때문이요, 그 가정에 딸만 있는 것도 조상의 저주라고 말을 한다. 그러다보니 인생을 살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들을 다 조상의 저주 탓이라고 돌려 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조상의 저주 탓으로 돌려 버릴 때 더 이상 자신의 책임은 사라져 버린다는데 있다. "나는 어차피 이렇게 죄를 짓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야!", "이렇게된게 다 조상의 저주 탓이야! 그러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BR><BR>얼마전 외도를 했던 어느 남자 집사를 상담할 때도 바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 남자는 아주 당당하고 떳떳하게 말을 했다. "나는 요, 어차피 외도할 수 밖에 없는 놈이예요. 우리 아버지도 그랬구요, 우리 할아버지도 여자를 서넛이나 두었어요. 우리 조상으로부터 흘러 온 저주의 피가 있는데 난들 어떻게 합니까?" <BR><BR>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지금 외도하고 있는 것은 조상 탓이지 자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자신은 앞으로도 외도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그 죄로부터 끊으려는 생각이나 노력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 회개는 아예 생각조차도 안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중요한 도구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계 저주'가 그에게는 크리스찬으로서 당연히 느끼게되는 죄책감으로부터 탈출시키는 신나는(?) 회피도구가 된 것이다. <BR><BR>더불어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저주'라는 생각이 오용되고 남용되면서 자신에 대한 책임 회피, 죄악된 생활에의 안주, 죄책감의 사라짐과 회개의 거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후유증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BR><BR>'가계 저주'가 몰고 온 또 하나의 후유증은 '축사 만능주의'이다. '가계의 저주'를 끊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모든 관심이 '저주를 끊는 것'에만 집중된다. 그러다보니 '상담적 접근'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물론 '신앙적인 접근' 역시 부차적으로 몰리고야 만다. 그것도 무리한 축사를 하다보니 그 후유증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후유증들이 몇몇 상담기관에 접수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가계의 저주'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공중 앞에서 고백하도록 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내담자는 축사 인도자의 강요와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모든 일들을 고백하고야 말았다. 물론 그 자리에 자기 아내와 동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사 인도자는 '성령의 역사'라고 부추기면서 낱낱이 고백하도록 만든 것이다. 젊은 날의 외도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여자 관계까지 '귀신에게 홀리듯이' 다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 그 부부는 이미 별거에 들어갔고, 아내는 강력하게 이혼을 요청하고 있다. <BR><BR>이런 경우도 있다. 이른바 '축사 중독증'에 걸린 경우이다. 그 자매는 모든 것을 축사로 해결하려 한다. 사사건건 축사 인도자를 찾아가서 귀신을 쫓아 달라고 말을 한다. 감기 들어도 축사요, 아이들이 공부를 안해도 축사, 요즘 잠이 잘 안온다고 축사..... 축사없이는 하루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그런 현상도 나타나곤 한다. 뿐만 아니다. 축사를 몇번이나 했는데도 차도가 없자, 그 내담자는 금기야 모든 상담까지도 무시해 버리고, 치료 자체를 기피해 버린다. <BR><BR>인간은 누구나 위기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본능이 있다. '가계 저주' 시리즈는 이 본능을 교묘하게 충동질하고 있다. 더불어 '단 번에 뿌리를 뽑으려는' 조급성까지도 '가계 저주'는 제대로 이용하고 있다. 열댓번, 수십번 반복되는 상담과정, 몇 달씩이나 지속되는 부부 훈련 과정보다는 '단 한번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준다'는 그 속삭임에 많은 성도들이 유혹당하고 있는 것이다. <BR><BR>중요한 것은 '가계의 저주'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망령된 행실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벧전 1:18)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진리 가운데 순종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깨끗하게 된다(벧전 1:22). 우리가 비록 어둠 속에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에서 불러 내 주신 것이다. 저주의 사슬에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밝은 빛 속에서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벧전 2:9). <BR><BR>다시한번 '가계의 저주'를 생각해 보자.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다 벗어 버리자.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속사람까지 거듭났다면 두려울게 무엇이랴! 이 시간, 나는 하나님 안에 살므로 조상으로부터의 모든 저주가 끊어지고 나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자. 그리고 담대하게 선언하자. <BR><BR>"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BR><BR>추부길 목사(한국가정사역연구소)<BR><BR>[출처: 크리스천투데이]</P><!--    <P style="margin-top:10px;padding-top:10px; font-size:13px; color:#0066cc">※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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